나는 오래도록 "무엇을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왔다. 감각의 세계는 눈앞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혹은, 정말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극히 작고 미세한 존재들, 이를테면 곤충의 날개 위를 덮고 있는 연약한 비늘들의 결합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일이 내게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 채집이 아니었다. 이 작은 생물의 날개 위에는 마치 우주처럼 확장되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패턴, 결, 균열, 반복, 그리고 이질적인 색의 경계들. 그 조형적 구성은 놀랍도록 정교했고, 어떤 작품보다도 완결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생명과 시간, 소멸과 존재의 이야기를 동시에 읽었다.
이 관찰의 과정은 나에게 회화의 언어를 다시 써 내려가게 했다. 나는 ‘표현하는 회화’가 아니라, ‘응시로부터 유도되는 회화’를 지향하고 있다. 한마디로 회화는 나의 의도를 투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의 작은 목소리를 길어 올리는 통로다. 감각과 관찰 사이, 이미지와 존재 사이의 아주 섬세한 틈을 붙들고서, 나는 그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기록한다. 회화는 그렇게 생성된다. 감각이 작동하고, 시선이 머물고, 손이 반응하며, 표면이 차곡차곡 축적되는 시간.
그림을 그리는 내내, 나는 스스로와 외부 세계 사이의 틈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한다. 그 틈은 나를 불안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사유하게도 만든다. 이 세계의 부서질 듯한 조형성과, 인간이 그것을 얼마나 무심히 지나치는가에 대한 자각도 함께 밀려와 나를 덮친다. 그래서 이 연작은 점점 더 생태적 감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가 관찰한 것은 단지 나비의 날개가 아니라, 감각의 재구성 방식이었고,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이는 곧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위기와도 직결된다. 인간 중심의 인식 체계를 흔드는 방식으로, 나는 가장 작은 이미지로부터 가장 큰 이야기들을 다시 말하고 싶었다.
이번 연작의 제목인 ‘Ma 마’는 사이(間)를 의미하는 단어로 공간과 시간,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여백을 가리키는 동양 철학의 개념에서 따왔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마’는 그저 개념이 아니라 감각의 단위다. 존재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진동. 나는 그 미세한 틈의 움직임에 회화로 응답한다. 이 ‘틈’이야말로 내가 지속적으로 탐색하고자 하는 감각의 본질이며, 존재에 대한 나의 질문이 머무는 자리다. 그래서 가벼운 환상을 느끼게 해주는 낯선 생명과 공간은 우리를 살게 하는 일종의 ‘틈(aperture)’에 가깝다. 그 틈이 있기에 우리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간극을 촘촘히 가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화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다 보면, 나는 종종 ‘보는 자’가 아니라 ‘응답하는 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응답은 기술적 능력 이전의 문제이고, 감각의 집중력과 존재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 작업은 끝이 없다. 한 점의 작품이 끝났다는 감각은 드물고, 오히려 새로운 미시적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내가 무언가를 계속 그리는 이유다. 그렇게 그림을 통해 나는 매번 세상의 결을 새로 읽고, 나 자신의 내면을 갱신하며, 감각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있다. 
Back to Top